지리산 북쪽자락에 위치하여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강이 흘러드는 경상남도 함양은 영남사림의 본거지로 ‘좌안동 우함양’이라고 불려왔던 선비정신이 면면히 흐르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이곳에 천년이라는 시간을 간직한 아름다운 숲이 있으니 바로 상림이다. 인공림으로 조성되었지만, 천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인공미와 자연미가 어우러져 인공미가 자연미가 되고 자연미가 인공미가 된 숲이다. 지금의 상림은 천연덕스럽게도 자연미를 앞세워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상림을 걸으면, 숲은 깊은 계곡인 양 짖궂게 장난을 걸어오기도 하고, 바로 집 앞 공원인 양 포근하게 감싸주기도 한다. 천년의 시간동안 수많은 희노애락을 겪으면서 닦여진 여유로움이 숲 안에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림은 단순히 아름다운 숲 이상의 가치와 이력을 가지고 있다. 신라의 진성여왕 때 당시 함양태수였던 최치원선생이 해마다 반복되는 위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이곳에 둑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심어 가꾼 것이 상림의 유래다. 초기에는 ‘대관림’으로 불렸으나 숲 가운데 부분이 훼손되면서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후 하림은 점차 모양을 잃고 사라졌지만, 상림은 나무들이 죽고 나기를 거듭하며 천년 세월을 버텨왔다. 상림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며, 유일하게 낙엽활엽수로 이루어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숲이다.
상림에는 지금 가을이 내려와 한창 제 빛을 내뿜고 있다. 아침이면 위천에서 올라오는 물안개로 숲 전체가 은은하게 빛나고, 낮에는 깊숙한 숲길을 넘보는 햇살이 곱게 물든 단풍에 부딪쳐 반짝거린다. 상림 숲길에 떨어진 낙엽들은 악공이 된다. 밟을때마다 바스락거리니, 이만한 ‘가을소나타’도 드물다.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낙엽은 훌륭한 레드카펫이 되어준다. 사랑하는 이와 두 손을 꼭 붙잡고 떠나가는 가을을 배웅하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으랴.....
이렇게 숲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었다 깨어날 때 쯤이면, 숲속의 문화재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유형문화재인 함양읍성의 남문역할을 하던 함화루와 가슴아랫부분이 유실된 이은리석불을 비롯해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 함양척화비, 사운정 등의 역사적 유물이 다수 있다. 역사인물공원에는 함양에서 수령을 지낸 이들의 송덕비와 선정비들이 있는데, 동학농민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탐관오리 조병갑의 선정비도 있다. 이곳에서 탐관오리 조병갑의 선정비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 숲길이 끝나는 즈음에는 함양을 상징하는 물레방아가 있다. 물레방아를 보고 돌아 나오는 길 옆으로 드넓은 연꽃단지가 보인다. 상림공원의 연꽃단지는 함양읍 운림리의 ‘연밭머리’라는 옛 명성을 되찾고, 지역명소로 키우기 위해 함양군에서 조성한 것이다. 수십 종의 연꽃이 피고 지는 여름철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가을이면 연꽃은 다 지고 연대만 삐죽이 남아, 마치 떠나가는 가을의 뒷모습을 연상시킨다. 상림이 들려주던 ‘가을소나타’가 끝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떠나는 가을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연인이어도 좋고 딸과 엄마라도 좋다. 부부라도 좋고 가족이 함께라도 좋은 곳이 바로 함양 상림이다. 매혹적인 단풍이 눈을 정신없게 만들고 물레방아와 연밭, 연리목 등 어느 하나 허투루 볼 게 없는 상림. 봄이면 새싹들로, 여름엔 싱그런 초록 잎으로, 가을엔 제 몸을 던져 소리를 내는 낙엽으로, 겨울엔 눈 내린 숲의 아름다움으로, 상림은 쉴 새 없이 제 모습을 바꾸어가며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굳이 계절을 따지지 말고 지금 당장 나서보자, 함양 상림으로!!
>>맛집 상림공원 부근에 맛집이 많다. 오곡밥과 연잎밥 등이 독특한 먹을거리이다. 늘봄가든(055-962-6996, 오곡정식, 10,000원) 옥연가(055-963-0107, 백연밥상, 15,000원)
>>찾아가는 길 88올림픽고속도로 함양IC->본백삼거리(우회전)->동문사거리(우회전)->함양중학교사거리(좌회전)->함양배움길->상림공원 주차장 대전통영간고속도로->지곡IC->지곡방향으로 우회전->함양중학교 사거리(우회전)->함양배움길->함양 상림공원 주차장
>>여행정보 개평마을, 운곡리 은행나무, 선비문화 탐방로, 지리산 오도재 등과 연계해 둘러볼만하다. * 상림공원, 개평마을과 운곡리 은행나무는 하루 일정으로 둘러보기에 무난하다. * 선비문화 탐방로는 약 6km의 남강을 따라가는 코스로 가족끼리 걷기에 아주 좋다. 트레킹을 좋아한다면 꼭 한번 걸어볼만한 길이다. |